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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공장/정치이야기

[518 광주항쟁] 5·18 신군부 5적 중 마지막 생존자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다

by 쥑쥑팩트맨 2026.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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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신군부 5적 중 마지막 생존자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다(이미지 출처 : 나노 바나나 생성)

📌 핵심 요약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에 깊이 관여했던 신군부 핵심 5인방의 마지막 생존자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2026년 9월 13일 향년 94세로 노환 별세했습니다. 이로써 현대사 격동기의 수뇌부 생존 인물이 완전히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되었습니다.

🚀 시작하며

요즘 각종 시사 방송과 유튜브 채널에서 한국 현대사의 비화를 다룰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인물이 있었죠. 바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육사 11기 동기이자 하나회의 핵심이었던 정호용 전 장관인데요. 방송가에서 연일 화제를 모으던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가했던 권위주의 정권의 막이 완전히 내려앉은 기분이 듭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하기도 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대목이네요.

📑 목차

1. 🌿 신군부 핵심 '마지막 생존자'의 퇴장

1-1. 육사 11기와 하나회 주역들의 최후

한국 현대사에서 육사 11기가 가지는 상징성은 실로 엄청납니다. 그 중심에는 군 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가 있었고,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호용 전 장관까지 이들은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했습니다. 그 시절 군부 내에서 이들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요. 세월이 흘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정호용 전 장관마저 이번에 영면하게 되면서 이제 육사 11기 주역들의 생존 인물은 역사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한 시대의 거대한 악연이자 질곡이었던 세력이 완전히 마침표를 찍은 셈입니다.

1-2. 역사적 진실 증언자 부재의 아쉬움

신군부 핵심으로 꼽히던 전두환, 노태우, 황영시, 이희성, 정호용 등 5인방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인 5·18 당시의 의사결정과 발포 명령의 실체를 알고 있는 핵심 당사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나 책임 있는 육성 증언을 온전히 남기지 않은 채 모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역사의 법정에서는 단죄를 받았을지 몰라도, 국민 앞에 진심 어린 사과나 낱낱한 고백을 듣지 못한 채 수뇌부 생존 인물이 모두 사라졌다는 점은 후세에 남겨진 커다란 숙제이자 씁쓸한 아쉬움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진실은 사람과 함께 묻히는 것인지 마음 한켠이 무거워집니다.

💡 한줄요약

신군부 핵심 5인방의 마지막 생존자인 정호용의 별세로 현대사 수뇌부 증언자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2. 🏡 주요 군 경력과 12·12 군사반란

2-1. 12·12 군사반란 당시의 역할과 특전사령관

1979년 12월 12일 발생한 군사반란은 대한민국 군부를 완전히 뒤흔든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하는 등 권력을 찬탈하기 위한 쿠데타를 단행했는데요. 정호용 전 장관은 이 과정에서 육사 동기들과 긴밀하게 호흡을 맞추며 반란 성공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후 군 내부의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고, 특히 군 내 최정예 부대로 꼽히는 특전사령관 자리에 오르며 신군부 권력 체제를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그의 군 경력은 곧 하나회의 세력 확장사와 정확히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2-2. 육군참모총장 임명과 군부 내 막강한 실세

특전사령관을 거친 그는 거침없는 승진 가도를 달리며 결국 군의 수뇌부인 육군참모총장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으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통치 기간 동안 군부 내에서 그가 차지하던 비중은 대단했습니다. 야전과 행정을 두루 거치며 군심을 장악하려 애썼고, 정권의 안위와 직결된 주요 의사결정마다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습니다. 동기인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군부 실세 중의 실세로 군림했던 그의 발자취는 1980년대 권력 구조가 어떻게 짜여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한줄요약

정호용은 12·12 군사반란 당시 가담해 특전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지내며 군부 실세로 군림했습니다.

3. 📜 5·18 민주화운동과 남겨진 역사적 과제

3-1.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연루 논란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참혹한 비극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거대한 상처입니다. 당시 특전사령관 등의 요직에 있었던 정호용 전 장관은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과정에서 군부 수뇌부의 일원으로 깊숙이 관여했다는 무거운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시민들을 향한 무자비한 진압 작전과 계엄군의 투입 과정에서 그가 어떤 지시를 내렸고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 수많은 광주 시민들과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요구해 왔습니다. 세월이 흘렀어도 그날의 아픔은 여전히 생생한데, 핵심 책임자로 지목되던 인물이 진실 어린 참회 없이 떠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3-2. 발포 명령 규명의 영구 미제화

5·18 진상규명 과정에서 가장 풀리지 않는 숙제는 바로 "누가 최초로 발포 명령을 내렸는가"라는 점입니다. 최고 수뇌부였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군부 핵심 중추였던 정호용 전 장관마저 사망함에 따라, 이 민감하고도 중대한 질문에 직접 답해줄 수 있는 직접 당사자들은 이제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공식적인 문구나 기록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숨겨진 진실들이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힐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려던 이들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아쉬움과 공백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역사의 진실은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아야 하는데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 한줄요약

5·18 유혈진압 연루자로 지목된 그의 사망으로 발포 명령 등 핵심 진실 규명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4. 🏛️ 정계 입문과 내무부·국방부 장관 시절

4-1. 장관직과 국회의원 당선

군복을 벗은 이후 정호용 전 장관은 자연스럽게 정계로 발을 넓혔습니다. 권위주의 정권의 후광과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내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 같은 국가 핵심 각료 자리를 두루 거쳤으며, 이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여의도 정치판에서도 상당한 발언권을 행사했습니다. 군 출신 인사들이 정권의 요직을 독식하던 시절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행정과 입법부를 넘나들며 권력의 중심부를 지켰는데요. 비록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정면으로 부딪히기도 했지만, 정권 차원에서 그에게 부여한 정치적 위상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막강했습니다. 화려한 타이틀 뒤로 드리워진 정치적 명암이 매우 뚜렷한 삶이었습니다.

4-2. 권력의 중심에서 누린 영화와 한계

내무부와 국방부 장관이라는 막강한 자리를 거치며 국가 안보와 치안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던 그는 한때 정권의 이인자 혹은 핵심 실세로 불리며 엄청난 권력을 누렸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지역구 관리와 정당 활동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맡으며 탄탄대로를 걷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이력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대적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권력의 절정에서 누렸던 영화는 결국 역사의 심판대 앞에서 무거운 짐으로 되돌아오게 되었고, 정치인으로서의 말년 역시 순탄치 않은 곡절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 한줄요약

전역 후 내무부·국방부 장관 및 국회의원을 지내며 권력의 중심에 섰으나 시대적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5. ⚖️ 법원의 단죄와 문민정부 시절의 특별사면

5-1. 1997년 대법원 실형 확정과 내란중요임무종사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신군부 주역들에 대한 사법 처리 칼바람이 불어닥쳤습니다. 정호용 전 장관 역시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의 책임을 물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반란가담 등의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7년 형을 최종 확정 판결받았습니다. 대한민국 국군과 정부의 최고 수뇌부를 지냈던 인물이 법의 심판을 받아 감옥살이를 하게 된 이 사건은, 권력으로 역사를 짓밟던 시대가 저물고 법치주의가 바로 서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5-2. 같은 해 연말 특별사면과 아쉬운 대책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그는 놀랍게도 형기를 다 채우지 않았습니다. 1997년 연말, 국민통합과 정치적 화합이라는 명목 아래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 말에 단행된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되어 극적으로 풀려나게 된 것입니다. 법원의 엄중한 단죄로 역사적 정의가 실현되는 듯했으나, 사면 조치로 인해 실질적인 처벌 기간이 짧아지면서 피해자와 유가족들 사이에서는 큰 실망과 분노가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비록 사면을 받아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역사에 새겨진 준엄한 낙인과 죄의 무게까지 완전히 씻어낼 수는 없었던 셈입니다. 씁쓸한 뒷맛을 남긴 사면의 역사였습니다.

💡 한줄요약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을 확정받았으나 같은 해 연말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6. 🕊️ 아주대학교병원 가족장과 쓸쓸한 퇴장

6-1. 외부 조문 없는 조용한 가족장 진행

2026년 9월 13일 노환으로 향년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정호용 전 장관의 장례는 예상보다 훨씬 조용하고 쓸쓸하게 치러졌습니다. 유가족들의 뜻에 따라 외부 조문이나 화려한 사회적 추모 행사 없이,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철저히 가족장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요. 과거 한때 군부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며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던 거물 정치인이었기에, 생의 마지막 가는 길이 이토록 적막하다는 점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불필요한 논란이나 갈등을 피하려는 유족들의 선택이었겠지만, 그 쓸쓸한 빈소 풍경 자체가 그의 기복 심했던 파란만장한 삶을 대변해 주는 듯합니다.

6-2. 권위주의 정권 수뇌부 생존 인물의 완전한 퇴장

이번 별세는 단순히 한 노인의 죽음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가장 뜨겁고도 폭력적이었던 격동기를 이끌었던 권위주의 정권 수뇌부 인물들이 역사 속으로 완전히 퇴장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마침표입니다. 전두환, 노태우를 거쳐 정호용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를 비극과 번영의 양극단으로 이끌었던 주역들이 이제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들이 남긴 공과 과는 역사의 기록 속에 무겁게 남겠지만, 다신 반복되어서는 안 될 암울한 시대의 상흔들을 우리가 어떻게 치유하고 기억해야 할지 깊은 숙연함을 안겨줍니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역사의 장이 오롯이 후세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졌습니다.

권위주의 정권 수뇌부 생존 인물의 완전한 퇴장(이미지 출처 : 나노 바나나 생성)
💡 한줄요약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외부 조문 없이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권위주의 수뇌부가 완전히 퇴장했습니다.

📊 정호용 전 장관 주요 생애 및 이력 비교

구분 주요 내용 역사적 평가 및 특징
군 경력 특전사령관, 육군참모총장 하나회 핵심 멤버로 12·12 군사반란 및 5·18 유혈진압 관여
정계 활동 내무부·국방부 장관, 국회의원 권위주의 정권 후광 속 권력 핵심부 유지
사법 처리 징역 7년 선고 (1997) -> 특별사면 대법원 실형 확정 후 연말 특사로 조기 석방
별세 정보 2026년 9월 13일, 향년 94세 아주대학교병원, 외부 조문 없는 가족장으로 진행

❓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정호용 전 장관은 언제, 어떤 이유로 별세했나요?

A1. 정호용 전 장관은 2026년 9월 13일 노환으로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Q2. 정호용 전 장관의 장례식은 어떻게 치러졌나요?

A2. 유가족들의 뜻에 따라 외부 조문을 일절 받지 않고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조용한 가족장으로 치러졌습니다.

Q3. 그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3.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육사 11기이자 하나회 핵심이었으며,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에 연루된 신군부 핵심 5인방의 마지막 생존자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망으로 수뇌부 직접 증언자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 마무리

한 시대를 풍가했던 거물의 퇴장을 보며 역사의 무게감을 다시금 깊이 실감하게 됩니다. 비록 아픈 상처와 미완의 과제들이 우리 앞에 남아있지만, 과거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성찰하는 것은 온전히 남겨진 우리의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이 글이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차분히 되짚어보는 작은 계기가 되었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역사 속 숨은 이야기들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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